한미 양국의 행정부 대표들이 서명한 한미FTA 협상안은 이제 양국 의회에 비준을 요청하는 단계에 와 있다. 현 단계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과연 한미FTA 협정문이 담고 있는 내용이 한미 양국의 농축산물 및 농업.농촌에 공정한 영향을 미치는지의 여부와 중장기적으로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어느 한 나라의 농축산업이 붕괴될 위험성이 높거나 공정한 무역이 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한미FTA는 국회에서 비준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런 측면에서 과연 한미FTA 협정문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과제라 생각된다. 전반적인 농축산업에 대한 평가와 함께 양계산업과 관련된 내용을 검토해 보자.
1. 주요 타결 내용
한미FTA 협정문의 주요 내용을 보면 쌀 및 쌀 관련 제품(HS 16 단위)은 관세철폐 대상에서 유일하게(정부의 설명) 제외되었으며 세번외의 찐쌀, 쌀빵은 10년이내에 관세가 철폐된다. 현행관세를 유지하는 품목은 탈지·전지분유(176%), 연유(89%), 식용감자(304%), 식용대두(487%) 및 천연꿀(243%)등이 있으나 이들 품목에 대해서는 무관세 쿼터를 제공하기로 했다.
오렌지 수확기에는 현행관세(50%)를 유지키로 하였고 사과, 배는 국내에서 주로 생산·유통되는 품종에 대해서는 세번을 별도로 신설하여 20년 동안 철폐키로 하였으며 나머지 품종은 10년간 철폐하는 것으로 하였다.
쇠고기, 돼지고기, 사과 등 민감품목, 고추, 마늘, 양파, 인삼, 보리 등 고관세 적용 품목에 대해 관세철폐로 인해 일정물량 이상 수입이 급증할 경우 자동으로 관세를 다시 올려 국내시장의 교란을 방지하는 완충 장치인 농산물긴급수입제한조치(ASG)를 도입하였으며 관세가 매우 높거나 민감한 품목(쇠고기, 고추, 마늘, 양파, 인삼, 사과, 포도, 배, 감귤 등)은 15년 이상의 장기 관세철폐기간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닭고기의 경우 10년~12년에 걸처 관세를 완전 철폐키로 했다. 냉장육(18%), 냉동(다리, 기타 절단육)(20%), 닭고기 가공품(30%)은 10년이내에, 통닭(18~20%), 냉동(가슴살, 날개)(20%)는 12년이내에 관세를 완전철폐키로 했고, ASG발동은 적용되지 않는다. 계란의 경우 난백(8%) 5년이내, 종란(27%) 10년이내, 난황(27%) 12년, 계란(41.6%/TRQ 30%)과 전란액(27%)는 15년 이내에 완전 철폐키로 하고 물론 닭고기와 같이 ASG의 대상이 아니다.
2. 평가
한미FTA 협정문에서 몇가지 중요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첫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대미문의 전 품목 관세철폐라는 사실이다. 일부 품목의 관세철폐 기간이 10~20년으로 비교적 장기간이긴하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관세가 철폐된다. 전 세계 어느 나라 FTA에서 예외 품목 하나 없이(정부는 쌀을 제외하였다고 주장) 전품목을 중장기적으로 완전히 관세 철폐한 FTA는 한미FTA가 유일하다. 미.호주FTA에서 미국은 342개 품목(19%)을 예외품목으로 했고, 호주 쇠고기 수입관세를 8년간은 유예하고 18년 후에 완전철폐키로하였다. NAFTA의 경우 미국과 캐나다는 미국은 유제품, 가금육, 계란, 마아가린등 58개 품목(4.8%)을, 캐나다는 35개 품목(3.4%)을 관세철폐 예외로 했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캐나다가 18개 품목(7.5%), 멕시코가 87개 품목(8.7%)을 예외로 했다. EU.칠레FTA의 경우 EU는 31.8%, EU.멕시코FTA에서 EU는 35%의 품목을 관세철폐 예외품목으로 하는 등 보통 20-40%의 품목을 관세철폐 예외품목으로 협상 하고 있다. 우리가 체결한 FTA에서도 관세철폐예외 품목은 한.칠레FTA에서 29%, 한.싱가폴FTA에서 33.3%, 한.EFTA에서 65.8%, 한.아세안FTA에서는 30.9%였다. 한미FTA에서는 1%에 불과하다.
둘째, ASG도 주요 품목의 관세철폐기간이 종료되면 발동할 수 없게 되거나 일부 품목은 2-3년 더 지속되어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ASG발동도 할 수 없게 되어 있고, 그나마 발동기준이 비현실적이여서 실효성이 없다. 닭고기나 계란류의 경우는 그나마 ASG발동 대상도 아니다. ASG 조치가 가능한 품목중에서 감자분, 보리, 옥수수, 전분, 쇠고기, 돼지고기, 사과(후지제외)는 관세철폐기간이 끝나면 발동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후지사과(20년철폐에 23년), 고추(15년에 18년), 마늘(15년에 18년), 양파(15년에 18년), 생강(15년에 18년) 인삼핵심(18년에 20년), 홍삼가공(15년에 18년), 참깨.참기름(15년에 18년)은 관세철폐가 끝나고도 2-3년 더 ASG를 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매우 잘한 협상으로 내 세우고 있으나 섬유부분의 경우는 10여년 더 일반긴급수입제한조치(SG)를 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발동기준에서는 불균형이 더 심하다. ASG는 가격 기준이 아니라 물량 기준만 적용된다. 해당 품목에 대해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는 세이프가드 기준 물량이 정해져 있고 이를 넘어설 때까지는 발동할 수 없다. 쇠고기의 경우 ASG를 발동하기위해서는 1년차에 27만 톤에서 매년 6천 톤씩 증량하여 15년차에 35만 4천 톤이 되어야만 ASG의 발동이 가능하게 되어 있어 비현실적이다. 2003년 쇠고기 수입량이 19만9천 톤 이였고 국내 쇠고기 소비량은 약 30만톤에 불과 했기 때문이다. 실행세율도 1~5년차에는 실행세율을 적용하나 6~10년차에는 실행세율의 75%, 11~15년에는 실행세율의 60%만 적용키로 하고 있어 결국 관세도 점차 낮아지게 되어 있다. 돼지고기의 경우 수입돼지고기의 약 95%나 되는 냉동육은 ASG의 대상도 아니다. 이에 반해 미국이 주로 수입하는 섬유는 물량기준은 물론 가격기준으로도 발동 가능토록 하고 있다.
3. 파급영향
이상에서 평가한 바와 같이 한미FTA는 우리 농축산업에 중장기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가져 올 것으로 예측된다. 그것은 양국간 보조금의 격차가 너무 커서 공정한 무역 또는 공정한 게임이 안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번 한미FTA협상에서 정부는 보조금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도 않았다. 관세를 상호 철폐하기만 하면 공정한 교역과 경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조금도 철폐되거나 지급액이 비슷해야만 공정한 무역과 경쟁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연간 70조원 내외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쌀 농가소득의 약 75%를 보조하고 있으며, 농가소득의 약 35%가 각종 명목의 보조금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년간 모든 보조금을 합쳐야 1조원 내외에 불과하다. 보조금 규모의 차이도 문제려니와 보조금의 내용 즉, 감축대상보조금을 미국은 아직도 연간 20조원 정도를 지불하고 있다. 이러한 보조금이 지급된 농축산물과 우리의 농축산물이 1대1로 경쟁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공정한 무역의 게임이 아니다. 불편부당한 게임을 영구적으로 한다면 한국 농업.농촌은 살아 남기가 어려워 질것은 자명하다.
둘째, 식량주권과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의 붕괴가 우려된다. 국제사회에서도 인정하고 있고 WTO체제하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농업.농촌의 비교역적 기능(다원적 기능)과 식량안보나 식량주권에 대한 논의는 협정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이번 한미FTA는 상품으로서의 농산물만을 협상 대상에 두었을 뿐이며 궁극적으로 한국 농업.농촌.농민의 포기를 염두에 둔 반국가적, 반민족적, 반농민적 협상에 다름 아니다. 이는 굴욕적인 협상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고 한미FTA가 무엇을 위해 추진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셋째, 선진국 진입에 장애가 될 것이다. 한미FTA로 인하여 중장기적으로 농업.농촌이 해체된다면 이는 우리 경제.사회 전반의 선진국 진입은 어렵게 된다. 산업으로서의 농업, 지역 공동체로서의 농촌이 존재하지 않는 선진국은 없으며 선진국이 될 수도 없다. 그것은 식량의 안전성과 안정성의 확보라는 차원에서도, 국토의 균형 발전과 효율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리고 지역공동체 유지를 위해서도 농업.농촌은 일정부문 존재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 국가의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이 지구상의 모든 소위 선진국들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농업.농촌을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넷째, 한국 농업.농민.농촌의 해체적 위기를 가속화 할 것이다. 한미FTA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대미문의 전 품목 관세철폐로 중장기적으로 농업.농촌.농민의 해체적 위기 가속화할 우려가 높다. 쌀을 제외한 전 품목 관세 철폐라는 신기록을 수립하였기 때문이다. 한미FTA가 만약 현 협정문 데로 발효된다면 상위 규모화농 10%와 영세농 30%만 남고 약 60%의 중농규모의 농민은 중장기적으로 분해될 것으로 보이며, 결국 농업은 현재의 약 30~40%, 농촌은 거의 사라질 것이고, 농민은 약 2~3%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농업.농촌.농민의 축소는 연간 약 60조원 내외로 추정되는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의 약 60~70%인 36조~42조원의 경제적 가치가 사라지는 것 뿐만아니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식량안보.식량주권.통일이후의 생산기반유지와 같은 기능등을 고려할 때 중대한 국가적 재앙이 될 우려가 높다. 우리의 후손들은 먼 훗날 농업.농촌을 되살리기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농업.농촌.농민 문제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데 고민이 있으나 우리 사회는 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다섯째, 고병원성 조류 인프루엔자(AI) '지역화'를 인정한 것은 국민의 건강과 국내 양계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독소조항이다. '지역화' 조건이란 한 지역에서 가축질병이 발생할 경우 그 지역의 가축은 수입이 금지되더라도 다른 지역의 가축에 대해서는 안전하다고 가정하고 수입이 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즉 미국의 택사스주에서 AI가 발생하면 택사스주에서 도축된 닭고기에 대해서만 수입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고 타주에서 도축된 미국 닭고기는 수입금지를 취할 수 없는 제도로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협상이다. 당연히 우리나라 양계산업에 악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여섯째, 닭고기는 저장기간이 짧아 냉장육 수입은 단기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어 가정용은 국내산 냉장육 중심으로 소비가 이루어 질 것으로 보이나 외식업소용은 냉동육 소비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외식산업이 확대 발전하면서 미국산 냉동 닭고기의 수입이 늘어나 국내산 닭고기 소비의 위축이 우려된다. 미국산 신선 계란의 수입 증가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나 미국산 난가공품(난백, 난황등)은 국내시장을 일정 부분 잠식할 것으로 우려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전체 닭사육농가의 약 53%인 3만수 미만의 닭사육농가(산란계, 육계포함) 약 2,000호는 중장기적으로 경쟁력 제고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큰 타격이 우려된다.
일곱째, 쇠고기 완전 개방으로 중소규모 사육농가 위기가 우려된다. 중소규모의 한우사육농가와 육우 사융농가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국 평균 호당 평균사육규모는 9.5두에 불과하며 전체사육농가 18만 9천호중 약 7만호(3.6%)가 전체사육두수의 약 35%를 사육하고 있으며 19마리 미만을 사육하는 농가가 87.3%로서 이들의 사육두수는 약 40.2%에 달하고 있다. 즉 대규모 농가와 19마리 미만 사육농가를 제외한 20두에서 99두까지 사육하는 농가가 전체의 약 11%로서 이들의 사육두수는 전체사육두수의 약 40%를 점하고 있는바 이들 중규모 사육농가의 타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육우 가격이 이미 급락하고 있어 큰 타격이 우려된다.
여덟째, 돼지고기는 미국산 쇠고기와 대체관계에 있어 타격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산 냉장쇠고기는 kg당 약 6,000원, 냉동쇠고기는 약 3,800원에 불과하여 우리나라 돼지고기(삼겹살)가격 약 10,000원보다 저렴함으로 현재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미국산 쇠고기와 대체될 부문도 많을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삼겹살 목살의 경우, 가격경쟁력에서 한국산 대비 미국산 가격은 1Kg 당 각각 32%, 38%에 그치고 있어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은 미국산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가 완전 철폐될 경우 가격 차이가 더 크게 나고, 수입육의 가격 하락이 한국산 돼지고기 가격 역시 동반 하락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전국 양돈농가는 10,765호이며 이중 1,000마리미만 사육농가는 약 71.3%인 7,678호, 1,000~5,000마리 사육농가는 26.5%인 2,862호, 5,000~1만 마리를 사육하는 농가는 156호(1.4%), 1만 마리 이상 사육농가는 65호(0.5%)로서 규모가 영세하다. 마리수 기준으로 보면 1,000마리 미만농가가 전체사육두수(약 930만 마리)의 약 19%, 1,000~5,000마리 사육농가가 약 58.6%, 5,000~1만 마리 사육하는 농가가 약 11.1%, 1만두 이상 사육농가가 약 11%, 5,000마리 이상 사육하는 농가가 약 22.1%를 사육하고 있다. 따라서 양돈의 경우도 규모화, 전업농화만을 추진할 경우 다수의 농가가 퇴출되거나 돼지고기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