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신문 위계욱 기자 |
전문기자의 시각
산닭판매 ‘득’, ‘실’ 따져 법 개정추진 돼야
닭고기 소비의 최대 시즌인 ‘복’이 지나면서 ‘좌불안석’에 놓은 양계산업 종사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토종산닭 상인들이다. 이는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자가도축’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축산물가공처리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복’ 시즌이 지난 요즘 토종산닭 상인들은 축산물가공처리법 개정에 맞서 발걸음이 분주하다. 생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서다.
수십년 동안 토종닭 판매에 열정을 쏟아온 이들에게 난데없이 생업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들은 지난 6월 18일 대전 유성구 소재 유성호텔에서 ‘한국토종닭유통상인연합회’를 결성한 데 이어 생존권 사수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유통 상인들은 생업을 스스로 포기할 수는 있으나, 쫒겨나지는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축산물가공처리법이 개정될 경우 당장 자가도축을 중심으로 한 가든, 산닭 판매장 등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토종닭은 ‘복’ 시즌을 제외하면 가든, 산닭 판매장 등에서 판매되는 수량은 기껏 50마리 내외다. 이런 현실에서 이들에게 대형 도계장에서 수백~수천마리를 도계해야 하는 현실은 너무 힘겨울 수밖에 없다. 보관할 장소도 없는데다 신선도도 떨어져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또 산닭이 소비자들로부터 무한 신뢰를 받는 것은 신선하면서 믿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산닭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한 산닭 판매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특히 토종닭 유통시장의 대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토종닭 유통 현실을 짚어보면 도계장을 거쳐 대형할인매장 등에서 판매되는 물량은 전체 소비량의 30% 내외에 불과하다. 가든, 식당, 산닭판매장 등에서 판매되는 물량이 60~70%를 차지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자가 도축을 금지시킨다면 유통시장 혼란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형 도계장에서 소량의 물량을 도계해 줄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가도축을 금지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밖에 없다. 소량 도계를 목적으로 한 유통상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유통상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소규모 도계장이다. 100수, 200수 등 필요한 물량을 자유롭고 합법적으로 도계할 수 있는 도계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조건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축산물가공처리법 개정은 한바탕 홍역을 치룰 것이 뻔하다.
따라서 축산물가공처리법 개정에 앞서 소규모 도계장 건립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산닭 유통상인들이 기존 생업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주고, 축산물가공처리법을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을 토종닭과 함께해온 유통상인들에게 ‘법이 바뀌었으니 당장 그만 두라’는 식의 정책은 안된다. 적어도 유통상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조치가 사전에 이뤄져야 한다.
더욱이 이번 AI(조류인플루엔자) 사태에서 재래시장 산닭 판매장이 AI 전파 주범으로 지목된 것도 못 마땅해 하는 상황에서 생업포기까지 강요하는 것은 유통상인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더구나 AI 발생조차도 과학적으로 입증 못하는 현실에서 유통상인들이 재래시장이 AI 전파 주범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라고 나선다면 논란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유통상인 스스로도 위생, 방역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 6월 18일, 27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자발적으로 방역교육을 실시했다.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된 교육에서는 무려 1천5백여명의 유통상인들이 참가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유통상인들의 이같은 높은 열기는 생업을 영위하고자 하는 절박한 심정에서다.
유통상인 산닭판매장 표준모델 제시할 터
유통상인들은 한발 더 나아가 스스로 산닭 판매장의 표준모델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산닭 판매 시설이 잘 갖춰진 일본 등 선진국에 자비를 들여 탐방하고 한국형 모델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산닭판매장의 위생, 방역 수준을 선진국과 동등하게 끌어올려 산닭판매장이 AI 등 질병전파의 온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계산이다. 또한 위생과 방역 수준을 완벽하게 준수하는 소규모 도계장 건립을 추진해 대형도계장과의 차별화도 꽤할 계획이다. 소형 도계장 뿐만 아니라 토종닭 판매장도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기준을 준수해 위생과 관련된 논란의 대상에서 벗어날 방침이다. 전국 산닭 판매장에서 토종닭을 진공 포장해 판매하는 방안도 논의가 활발하다.
이같은 유통상인들의 자구책 마련에 대해 정부는 원칙만을 내세워 대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적어도 이들이 스스로 노력하는 열정을 인정하고, 이들이 합법적으로 생업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특히 축산물가공처리법 개정을 통해 무작정 3천여 유통상인들을 범법자로 양성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양계산업의 건실한 발전을 위해 당당히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그 대안을 찾는데 이들과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더욱이 소비자들이 도계장을 거쳐 온 닭보다 산닭을 선호하는 현실도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산닭이 보다 철저한 위생 절차를 거쳐 소비자들에게 판매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고, 산닭 판매를 무조건 불법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합법화 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도 제고해 봐야 한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아주 귀한 손님이 집을 방문하면 씨암탉을 직접 잡아주는 풍습이 있다. 흔히들 사위가 처가를 방문할 경우 장모가 기꺼이 씨암탉을 잡는다고 해서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만약 자가도축이 금지된다면 이 세상의 사위를 둔 장모는 더 이상 씨암탉을 잡아줘서는 안된다. 우리민족 고유의 풍습인 ‘사위 사랑은 장모’가 위기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