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환 농촌진흥청 축산환경과 농업연구사
머리말
국내 축산업 비중이 전체 농림생산액의 약 1/3을 차지할 정도로 그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고 있으나, 시장개방 확대, 국제 곡물가의 상승 및 유가의 상승 등으로 인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축산물의 위생과 안전성 확보는 축산업에 있어 필수 불가결의 요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EU FTA 협상에서 동물복지가 주요의제로 채택되고 국내․외에서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들이 대두되면서 축산 관련 분야에서는 농장동물의 복지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외국의 경우 동물복지관련 비정부 조직(NGO)들이 기업이나 국가를 대상으로 동물복지의 향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을 포함한 미국, 캐나다 등은 동물복지와 관련한 법률과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규제들은 결국 보이지 않는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동물복지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농장동물의 동물복지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동물복지의 동향과 전망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동물복지의 동향과 전망
1. 동물복지와 농장동물
본 저자가 ‘동물복지’에 대해 강의를 할 때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간의 복지도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데 무슨 동물복지를 따지냐?’라고 되묻곤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동물복지라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양축농가에서는 이미 동물복지적인 사육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양축농가에서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인가? 가축의 상태와 분뇨상태를 살펴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물의 생리를 이해하고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려는 동물복지의 시작인 것이다.
동물복지라는 것은 ‘지적능력을 떠나서 고통을 느끼는 것을 배려해야한다’라는 철학적 개념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사람의 복지와는 그 의미의 차이가 확연하다. 동물복지가 처음 태동하기 시작한 것은 싱클레어(Upton Sinclair)가 쓴 소설 ‘정글’(The Jungle, 1906)에서부터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을 끌어낸 것은 해리슨(Ruth Harrison)이 저술한 ‘동물 기계’(Animal Machines, 1964)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1975)이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피터 싱어는 철학과 교수이자 실천윤리학자로서 동물복지의 철학적 개념을 완성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동물복지학적인 측면에서 동물은 크게 농장동물(Domestic animals), 실험동물(Laboratory animals), 야생동물(Wild animals) 및 반려동물(Companion animals)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기본적인 동물복지의 개념은 모든 동물에게 동일하게 적용이 되지만 의미는 그 목적에 따라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물복지의 향상을 주장하는 동물복지단체들과 양축농가들과의 마찰은 반려동물(개, 고양이 등)들의 복지를 생각하는 관점으로 농장동물(소, 돼지 등)의 동물복지를 바라봄으로써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말은 ‘반려동물을 돌보는 것’과 ‘농장동물을 사육하는 것’은 근본적인 목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농장동물의 동물복지는 ‘외부로부터 인위적으로 가해지는 불필요한 스트레스의 최소화’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축산물의 이용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것이 가축이며 농장동물인 것이기 때문에 ‘고통을 배려해야한다’라는 의미가 보다 유연하게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 농장동물복지의 범위와 효과
농장동물복지는 생산에서부터 소비까지 전반에 걸쳐 관계되어지지만 일반적으로 크게 사육, 수송 및 도축으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즉, 사육밀도를 줄여주는 것, 출하 혹은 수송 시 전기봉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 도축 시 고통을 줄여주는 것 등이 농장동물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축산업에서 동물복지라는 것은 더 많은 부지를 필요로 하고 생산비용만 상승시킬 뿐 생산성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농장동물의 복지를 바라본다면 동물복지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농장동물을 하나의 내부환경이라고 가정할 때 사양관리나 시설․환경 등은 외부환경이라 할 수 있는데 동물복지는 외부환경으로부터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여줌으로써 번식지연이나 산자수 감소 등을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육의 고품질화 및 안전성 향상 등 양축농가에 직접적인 소득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농장동물의 복지인 것이다.
3. 동물복지 관련 정책동향
세계동물보호협회 등 동물복지관련 비정부 조직(NGO)들은 기업이나 국가를 대상으로 동물복지의 향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NGO들의 로비와 영향력으로 인하여 맥도날드에서 인도적인 방법으로 사육하는 농장의 계란과 고기를 구입하겠다고 공포하였고(2000년), 버거킹과 웬디스도 동물복지기준을 준수하겠다고 공포하였으며(2001년), KFC에서도 부화에서 도계까지 닭을 인도적으로 다루는 기준을 제정하겠다고 하였다.
유럽연합(EU)을 포함한 미국, 캐나다 등은 동물복지와 관련한 법률과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에서 동물복지 가이드라인을 채택하여 운송 및 살처분 기준을 제정하였다. 또한 EU는 2013년부터 산란계 케이지사육, 모돈의 스톨사육 및 송아지우리의 사용을 금지하게 하였다. 캐나다의 경우 알버타주 동물복지 부서에서 동물의 인도적 관리, 복지에 관한 연구 및 기술 이전을 실시하고 있으며, 1973년부터 가축의 인도적 수송에 대하여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특히 뉴질랜드는 동물복지 자문위원회를 만들어(1989) 자국의 농산물 수출 시장 확보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1년 동물보호법 제정 이후 수차례 개정이 논의되었으나, 2007년 1월 26일에서야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공포되었으며 현재 시행(2008. 1. 27) 중이다. 친환경 축산정책의 일환으로 축산업등록제와 친환경직불제가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동물운송 세부규정도 2008년 8월 4일 고시되어 시행됨에 따라 반려동물 뿐만 아니라 농장동물의 복지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4. 동물복지 관련 연구동향
외국의 경우 농장동물(Domestic animals), 실험동물(Laboratory animals), 야생동물(Wild animals), 반려동물(Companion animals) 등 동물 전반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동물의 생리와 심리상태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들이 주로 행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사육환경, 사양관리 및 동물복지의 향상을 꾀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이러한 연구에 대해서 농가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1960년대 말부터 동물복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기존의 많은 사육시설들이 개선되어야 함을 인지하고 축종별 대체 사육시설에 대한 연구들을 많이 수행해 오고 있다. 몇 몇 연구결과들은 현재 농가에서 적용되고 있으며 시험단계에 있는 것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임신돈의 군사 사육시설인데 그림 5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군사 사육시설이 적용되고 있다. 돈방 군사 사육시설은 돈방 단위로 임신돈을 군사 사육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시설이며, 개방식 군사 사육시설은 축사 내 간단한 구획만을 만들어 주어 보다 넓은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시설이다. 또한 개방식 군사 사육시설에 운동장을 추가하거나 깔짚을 제공함으로써 임신돈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있다.
산란계의 경우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축종 중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많은 연구들이 행해지고 있는데 방사 사육시설이나 다단식 방사 사육시설 등의 동물복지형 케이지들이 현재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방사 사육시설(Free range)은 닭을 방사하며 계사 밖으로도 나갈 수 있는 형태이며, 다단식 방사 사육시설(Aviary)은 관행의 케이지 형태를 갖추었으나 앞문이 열려져 있어 닭이 계사 내부에서 왕래가 가능한 특징이 있다. 이외에도 난상, 모래목용상자 및 횃대가 갖추어진 Enriched cage도 있다.
5, 동물복지형 축산물 인증
외국의 경우 동물복지적으로 생산된 축산물에 대해 인증마크를 활용하여 일반 축산물과 차별화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5가지 자유'를 기준으로 생산되고 인도적으로 수송, 도축한 축산물에 대해서 ‘Freedom Food’라는 동물복지형 축산물로 인증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영국의 기준에 맞추어서 생산된 축산물에 대해 ‘Free farmed certified'라는 동물복지형 축산물로 인증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의 경우 방사형으로 사육된 닭과 계란에 대해서 ‘Label rouge'라는 동물복지형 축산물로 인증하고 있다.
맺음말
세계적으로 동물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관련 법규와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점, 스트레스가 최종 산물의 품질 및 안전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동물복지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EU의 각 국가간 주어진 여건의 차이로 인하여 동물복지의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한 통일된 규제들을 만들지 못한 부분들도 있다. 이런 문제점들로 인해서 OIE(국제수역사무국)에서는 운송, 도축 등 일부분에 대해서만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으며, 현재 2010년까지 전반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국내 축산여건에 맞는 한국형 동물복지 사육시설을 연구․개발이 필요하며, 관련규정들의 마련이 시급하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는 세계적인 동물복지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농장동물복지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모돈 스톨과 산란계 케이지의 대체 사육시설(Alternative system)을 연구․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농장의 현실과 동물복지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으며, 아직 해결해야 될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물복지향상에 있어 중요한 것은 농업인들의 동물복지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농업인들의 동물복지에 대한 열린 마음과 노력이 하나로 뭉쳐진다면 동물복지는 풀기 어려운 난제가 아니라 국내 축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호기가 될 것이라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