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비둘기

전쟁과 레이스 비둘기

파란알 2007. 8. 6. 10:37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영국은 수많은 비둘기들을 유럽전쟁터로 이송했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전황을 도버해협을 건너 보고하는 방법은 비둘기가 당시에는 최상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전시에는 영웅으로 부상된 일화는 많다. "쉐어아미"라는 영국의 비둘기가 화제의 주인공. 1918년 10월 27일 프랑스 북부요새에서 미군과 독일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미군은 대대전체가 전멸직전까지 놓이게된다.

이에 다급해진 미군은 프랑스 진영으로 유일한 통신수단인 비둘기를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포성으로 대부분의 비둘기들이 놀라서 흩어졌고 아까운 생명을 잃어버린 반면, 이중 "쉐어아미"라는 검은 체크무늬의 비둘기는 한쪽 눈과 다리를 잃어버리면서까지 포화속을 뚫고 프랑스진영에 도착, 미군의 절벽한 상황을 알렸다.

긴박한 상황에 접한 프랑스군은 지원군을 보냈고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쉐어아미"란 비둘기의 결정적인 역활이 컸던것.

이 비둘기에게 프랑스는 전쟁공로 십자장 훈장까지 수여했고, 미국의 소미소니언 기념박물관에 박제로 보존했다.

군용비둘기 중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중 무려 1천명 이상의 영국군을 구해내는데 기여한 "조"라는 영웅적인 비둘기도 있다.

지난 1943년 10월 18일 영국 제56여단은 이탈리아의 콜비베치아시를 점령했다. 그러나 미국 공군은 독일군 패잔병들이 남아있는줄 알고 대규모 폭격을 감행하려 했고 이미 아군 포병부대 포탄은 영국군 머리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통신장비가 전부 파괴되어버린 영국군은 "조"를 날려 폭격을 중단해 달라는 내용의 메세지를 띄운다. "조"는 20분간 32km를 날았고 전달해준 내용으로 포성을 멈추게 했다. 전쟁이 끝난 1946년 "조"는 영국시장으로부터 메달을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동물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명예의 전당 회원으로 모셔졌다.

제 1, 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가 깃들기 시작하자 비둘기 사육은 종래의 통신용에서 탈피하여 레이스를 통한 순수 스포츠로 전환하면서 오늘날의 대중 스포츠로 지위를 굳히기 시작했다.

더구나 유럽 각지에서는 신문, 방송 등을 통해 비둘기 레이스 상황을 보도할 정도로 정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