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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맞춤형 안전축산만이 우리 축산의 살아갈 길이다

파란알 2008. 9. 23. 08:20



축산과학원 이상진 원장

 
 
최근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인한 광우병 파동,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AI)의 창궐 등 축산에 관련된 여러 사태를 겪으면서, 스스로 몸담고 있는 이 산업에 대한 성찰이랄까, 다시 말해서 '어떻게 무슨 일을 해야 축산업이 이 사회에서 존재해야할 가치있는 산업으로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해봤다.

떠오른 생각 중의 하나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한 축에 달려있는 두개의 바퀴중 하나에 조그마한 다름이 생겨도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이 튕겨나는 것과 같은 상생과 공존의 관계였다. 결국 양쪽은 숙명적으로 같은 꿈을 꾸어야 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필자 스스로의 관심도 상당부분 생산문제에 치우쳐 있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주부들이 가족들을 위한 먹거리를 고를 때나 가장이 가족들을 데리고 외식을 할 때 마다 '이 축산물이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피곤한 확인을 해야하는 소비자의 입장보다는 '좀 더 싸게, 좀 더 빠르게, 좀 더 많게 만들어 내는 방법' 에 관심을 던지는 쪽에 익숙해져 있던 것이다.

일전 모 연구기관은 우리 국민들의 소비성향이 '외식비중 확대, 건강 중시, 맛 지향, 간편화를 추구하면서 양에서 품질중심으로 전환'되었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영양소 섭취원으로서 곡류소비는 감소하고 동물성 식품에 의존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제 축산물은 소비자의 먹거리 목록에서 선택사항이 아닌 일상의 필수목록이 된 것이다. 당연히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 역시 일상의 관심사로 자리매김 되어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비환경의 변화요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빠른 정보화추세다.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인국 100명당 29명으로서 유수의 선진국을 제친 세계 1위다. 초고속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양질의 소비자 정보가 연일 제공된다. 전자상거래도 확대되고 있다. 수천 개에 달하는 인터넷쇼핑몰들은 소비자 구미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제공을 통해 소비자의 눈높이를 하루가 다르게 변화시킨다. 또 다른 요인은 공급자가 다변화되었다는 점이다. 국산과 외국산이 한 매장에서 선택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환경문제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산업화와 더불어 대기 수질 토양 오염이 계속되고 있다. 2005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환경지속지수를 보면 42위로서 세계 하위권에 속한다.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게 된다. 환경을 훼손하는 생산활동이 용납받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그러한 축산물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상품과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이 증대된 탓에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자연스레 퇴출된다. 기업의 시장내 진입 퇴출권을 소비자가 행사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 축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깜깜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이라 표현할 만큼이다. 그러나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고 그것을 지나면 반드시 우리를 반기는 밝은 빛이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축산물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동선(公同善)을 행사하고 누리는 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축산인 모두에게 주어진 시대의 소명이다. 축산과학원에서는 우리 고유의 한우고기를 지키기 위해서 유전자 감식법을 이용한 한우고기 판별방법 개발에 이어 SNP와 초위성체 마커를 조합한 유전자 감식법 개발로 한우와 수입우의 판별기법을 개발하였다. 정부는 '07년 12월 "소 및 쇠고기 이력추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금년 12월 사육단계에 대해 쇠고기이력추적시스템(Traceability)을 전면 실시하여 시중에서 판매되는 모든 한우고기에 대한 이력추적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품질 좋은 한우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우량 씨수소 선발, 보급으로 18개월령 체중 기준으로 연간 8.4kg의 체중을 증가시키면서, 암소개량, 비육기 개체별 맞춤사양기술 개발, 초음파 기술을 활용한 출하시기 조절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제대로 된 우리 고유의 안전 한우고기 생산기술을 보급하였다.

닭의 경우도 우리 고유의 품종을 복원하여 산업화의 길을 내딛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잃어버렸던 종자를 수십년 간에 걸쳐 복원하거나 토착화 시켰다. 종자의 중요성을 예견한 국내의 가금분야 선배학자들이 오래전 산간오지를 헤매면서 수집한 것을 후진들이 이어받아 계통을 조성하였다. 이 종자를 모본으로 잡종강세를 이용하여 종계를 만들면 제대로 된 '장모님의 씨암탉'이 가능하다. 이 종자를 이용하여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맞춤형 닭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값싸게 빠르게 많게'는 과거의 캐치프레이즈이다. 앞서 말한 소비자들의 성향변화는 국내축산업계에 생존의 위기가 아닌 성장의 기회로 활용해야한다. 단지 값싸고 품질좋은 제품이라고 무조건 잘 팔리는 시대는 지나갔다.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산자는 분명 성장한다. 과거 어느 시절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국익이란 논리하에 국가경제의 목적이기 보다는 수단이 되어왔던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폐쇄된 상품시장에서 애국심에 기반을 둔 국산품 애용이었다. 그러나 떳떳이 자기가 번 돈으로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을 구입하고자하는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행사가 어려운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생산자가 변해야 할 차례다. 먹거리는 소비자들의 가장 예민한 감각기관과 접해야하는 품목이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누군가 책임을 질수 있는 분명한 생산이력관리 체계가 만들어져야한다. 안전성 품질 및 차별화 정도에 대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소비자에 요구할 가격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