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계산업의 2008년을 돌아보면 뭐니뭐니해도 고통스러웠던 것은 고병원성 인플루엔자 발발이었다. 이어서 터지는 배합사료가격 폭등, 미국산 수입쇠고기의 영향, 자조금, 계열화사업 등을 빼 놓은 수 없다.
1. 자식 같은 닭을 생매장해야 했던 고병원성 가금인플루엔자
시도 때도 없이 터진 고병원성 AI는 양계산업을 초토화 시키기에 충분했다. 2008년 4월 2일 전북 김제에서 발생한 AI(조류인플루엔자)가 고성원성으로 판명되어 마침 사료값 인상 등으로 고초를 겪고 있던 양계업계는 엎진데 덥친 격이 되었다. 지금까지 AI는 주로 철새가 이동하는 겨울철에 발생해 그 원인을 철새 이동에 초점을 두었지만 이번처럼 4월에 발생한 AI로 인해 AI 발생의 새로운 패턴을 보인 사례가 되었다.
이번 AI는 최초 발생일 2008년 4월 2일부터 해제조치를 취한 5월 12일까지 42일 동안 11개 시·도, 19개 시·군·구에서 총 33건이 발생했으며 닭오리 등 가금류 846만수가 살처분되는 등 사상 최악의 AI 사태로 기록됐다. 더욱이 그 동안 가금류 밀집 사육지역에서 발생됐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권까지 발생함에 따라 극심한 가금류 소비 위축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AI는 과거에 비해 발생건수는 많았지만 발생기간이 과거에는 100일이상 지속되던 것이 이번에는 42일로 크게 단축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할 수 있다.
이처럼 발생 기간을 단축 시킬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AI 방역지침 외에 재래시장과 수송차량 등에 대한 통제조치가 주효했다는 평가이다. 이를 놓고 유엔(UN)이 한국과 영국을 AI 방역 모범국가로 평가한 바 있다
한국은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에 따라 마지막 발생지역(경산)의 살처분 소독조치가 완료된 지난 5월 15일을 기준으로 3개월이 경과된 8월 15일부터 AI청정국 지위를 회복했다. 그런데, 지난 AI 발병 때와는 달리 국내 언론의 원색적인 보도는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언론의 호들갑은 여전했다. 텔레비전에는 과거에 촬영된 자료화면을 마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처럼 경쟁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소비자들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했다.
이처럼 언론이 AI 관련 보도를 경쟁적으로 남발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이 조성되었고 소비자들은 확인되지도 않은 소문만 믿고 가금산물 소비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이에 양계산업의 핵심을 첫째도 방역, 둘째도 방역이라는 철저한 경계심으로 안심 양계산물의 공급에 힘써야 할 것이다.
2. 때리는 데 또 때리는 사료곡물가 상승과 환율의 폭등
11월 17일 현재 원 달러 환율이 1,400원대로 치솟아 올라 지난 IMF 이후 최고치다. 사료곡물가격 폭등에 이어 환율급등으로 사료업계는 융단 폭격을 맞게 되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축산업계, 특히 100% 배합사료에 의존하는 양계산업으로 전가되고 있는 현실이다.
배합사료업계는 지난 1월, 3월, 5월, 7월 10월 5차례에 걸쳐 평균 50% 이상 올라 사료가격을 또다시 인상할 수 없기 때문에 축산업계가 온통 환율 공포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환율 10원 상승은 배합사료가격 kg당 3원의 인상요인이 발생한다.
그동안 배합사료 주요 원료인 옥수수와 대두박 국제가격이 상승세를 멈추고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원 달러 환율의 상승으로 그 영향이 상쇄되어버린 형국이다. 이처럼 사료곡물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은 옥수수의 경우 미국의 금융위기가 유럽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이에 따른 수요 둔화 우려 및 달러 강세, 유가 약세 등의 요인과 해상 운임까지 하락하였고, 투기세력들이 이탈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옥수수 시장의 불안은 여전하다. 이러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에서는 사료원료곡 확보를 위한 해외 사료자원개발을 대안으로 들고 나왔고 사료업체를 중심으로 민간 기업들이 해외자원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민간업체가 앞 다투어 해외자원개발에 나섬에 따라 대상국의 농지 가격이 올라가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생산된 곡물을 생산하여 국내로 반입하기 위해서는 농지확보 보다는 물류 관련 설비나 유통 인프라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진출을 시도하려는 국가는 대부분 저개발국으로 SOC가 전혀 구축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SOC구축이 마련이 사실상 더 시급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해외자원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당국과 공동투자, 공동개발이 필요하며 정부는 기술, 정보, 자금, 외교 등 분야에 대한 간접 지원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3. 미국 쇠고기는 다시 들어오는데 왜 우리는 미국으로 삼계탕을 수출 못한가?
미국은 자기네 쇠고기는 팔아먹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 우리나라 삼계탕을 아직 수입하지 않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한국의 삼계탕 수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9년 291,000 톤이던 것이 2006년에는 96만톤, 2007년에는 88만톤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출 대상국은 일본 대만 홍콩 등 아시아권 국가로 제한되고, 미국에는 아직 전통적인 삼계탕 형태로 수출된 적이 없다.
삼계탕을 미국으로 수출하려면 미국이 제시한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삼계탕용 닭 사육부터 도축 등 모든 제조과정에 대한 HACCP 적용은 기본이고, 우리의 도축 및 가공 처리과정에서의 위생관련 규정과 지침, 위생관리기준(SSOP)이 미국 수준과 부합돼야 한다. 또 가축질병 감시와 잔류물질 관리도 철저해야 한다. 이밖에 도축 및 가공시설, 창고 운송차량 등의 관리도 '완벽'함을 요구하고 있다. 첨가제와 포장재는 물론 청결 및 위생용으로 쓰이는 세제까지도 미국의 규정에 부합돼야 한다.
제품의 실험을 위한 샘플링과 검사통제방식도 완벽해야 하고, 살모넬라균 시험도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실천계획을 한국 정부는 이미 미국측에 제출한 바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미국 정부 관리들의 현장 점검뿐이다. 문제는 우리 업계의 관심과 준비상태다. 이처럼 까다로운 미국측의 요구를 충족시키기가 어려운데다 삼계탕 수출에 따른 수익성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다. 800g 기준 삼계탕의 국내 판매가격은 4,370원인데 수출가격은 4달러 수준이다.
미국은 세계 제일의 가금육 생산국이자 수출국인데 이런 나라에 닭고기를 수출하겠다는 것이 무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는 250만명에 달하는 재미동포와 유학생이 있다. 필자가 최근 캘리포니아 LA 애리조나지역 재미동포와 유학생을 대상으로 삼계탕 구매의사를 설문조사한 결과 77.1%의 응답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이 든 교포들뿐만 아니라 청년 유학생들도 한국에서 먹었던 삼계탕 맛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직수입된 삼계탕이 아직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한국식품점에서 판매하는 삼계탕 부자재와 작은 닭을 구입, 가정에서 요리해 먹거나 한국식당에서 흉내만 낸 삼계탕으로 대리만족하고 있다. 이런 재미동포나 유학생 소비자들이 미국에 있는 한 삼계탕의 대미 수출 전략은 성사시킬 가치가 충분한 정책임에 틀림없다.
삼계탕을 미국에 상륙시키려면 1차적으로는 재미동포나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판매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다가 여건이 성숙되면 아시아계 미국인, 더 나아가 순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전략을 단계적으로 세워야 할 것이다. 물론 국내 삼계탕 수출업체에 대한 지원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또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식의 세계화' 계획에 삼계탕을 포함시키면 더욱 힘이 보태질 것이다.
4. 이름값을 못한 축산자조금, 이대로 좋은가?
축산자조금은 축산업자들이 축산물에 대한 홍보 및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스스로 일정액을 의무적으로 갹출하여 조성한 자금이다.
따라서 축산자조금은 당연히 축산업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축산 자조금에 대한 감사 결과 축산 자조금이 축산업 발전을 위하여 투명하게 집행되지 못한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납부의무자인 양축농가와 도축업자들의 큰 불만을 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법으로 강제한 자조금을 시행한지가 언제인데 2008년에 들어서 처음으로 감사를 받았다니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기는 꼴"이 되었다.
원래 축산자조금은 미국에서 체크오프(Check-off)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서 미국내에서도 위헌시비가 걸리는 등 우여 곡절이 많은 제도이다. 한국에서는 이전부터 미국의 제도를 모방하여 자발적으로 축산자조금을 실시해 왔고 양계, 오리에서는 강제성 자조금은 아니라도 자발적 자조금을 실시해 오고 있다.
그런데 강제성이 없는 자조금은 "공차 타기"를 방지하기 어렵다하여 강제성 자조금을 2004년에 양돈업계가 처음으로 도입했던 것이다. 그 후 한우, 낙농이 참여해서 앞의 세 가지 축종에서 2007년에는 384억원을 갹출하였고 여기에 정부 지원금까지 합치면 700억원이 넘은 자금이 자조금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거액의 자금은 대부분 축산물 TV 홍보에 쓰여졌지만 대부분 양축가들은 이것이 축산물 소비증대로 이어졌다고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축산물 소비촉진은 당연히 판매업자가 해야지 왜 "피같은 양축가의 돈"으로 해야 하냐고 불만하고 있다. 현재 한우는 마리당 2만원, 돼지는 600원, 낙농은 원유 1 당 2원씩의 강제성 자조금을 내고 있다.
말 그대로라면 축산자조금은 스스로 자진하여 갹출한 자금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관련된 의사 결정도 양축농가 들에 의하여 자치적으로, 그리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자금의 사용도 가장 투명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 축산 자조금제도를 만들 때에는 자조금 계속 여부를 주기적으로 투표를 통하여 확인하자고 해 놓고 지금은 아무도 이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 또한, 자조금만 있으면 뭐든지 해결된다는 잘못된 인식도 불식되어야 하고 자조금 관리를 놓고 협회와 협동조합이 싸움도 이젠 그만하고 관리 능력이 있는 기관에 맡겨야 한다. 더구나 자조금 관리를 위하여 별도의 기관을 만드는 것도 해서는 안된다. 옥상옥을 만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 강제성 자조금을 출범시키지 못한 양계업계에서는 기존의 한우, 낙농, 양돈업계가 겪은 시행착오를 피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5. 소잃고 외양간 고칠 것인가?
축산농가가 배합사료 가격 급등, 외상거래 단절, 축산물 가격 하락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는 10년 전 IMF 금융위기 사태 때보다 더 힘든 상황으로 축산을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축산농가의 패배의식이 확산 되면서 특단의 조치가 요구되고 있다. 또한, 사료가격이 이처럼 급등한 것은 사료의 원료가 되는 옥수수가 대체에너지로 사용되면서 가격이 급등하자 사료회사는 그 여파를 고스란히 축산농가에게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산 농가의 고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배합사료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품질조차 하락하여 평소보다 20~30%를 추가로 더 급여해야 할 뿐 아니라 사료를 구매함에 있어서 종전에는 외상거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현금을 주고도 사료를 구매하기가 쉽지 않아 축산 농가는 불안감과 자금압박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돌발 사태는 아니다. 옥수수가 대체에너지로 쓰인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해외토픽으로 보도되었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 되면 소 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라도 예측가능 했다. 알면서도 대비를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멍청히 있다가 당하고 만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 농가 특별 사료구매자금으로 1조 5000억원을 연리 1% 조건으로 풀었지만 담보능력이 없거나 농가부채 증가를 주저하는 농가에게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한다. 가축을 굶겨 죽이는 사태가 발생해서는 아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는 사료구매자금을 추가로 보다 더 유리한 조건으로 풀어서 일단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한다. 특히, 담보능력이 없는 축산 농가를 위해서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 주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가 힘써 할일은"비오는 날"을 대비한 경영의 기초를 지금부터서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사료 안정 기금이나 사료곡물 비축제도 같은 시책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
또한 사료회사도 고통분담의 정신으로 축산농가의 도산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는데 나서야 한다. 축산농가가 없으면 사료회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